2009년 11월 09일
아듀, 산비둘기여!
몇 년 전인가 갤러리에 작품을 운반하고 돌아왔을 때
우린 커다란 창틀 밑에 목이 부러진 채 죽어 있는 산비둘기를 한 마리를 보았었다.
늘 두 마리가 한 쌍으로 날아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때로 집 앞 큰 나무에 앉아서 함께 나무 열매를 먹곤 하던 한 쌍이었는데....
우린 죽은 새를 상자에 넣어 뜰 한 구석에 묻어 주었다.
그 후로 남은 한 마리는 잘 울지도, 먹지도 않은 채
둘이 함께 앉아 있던 나뭇가지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운동을 할 때면 늘 건너편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 있을텐데 하며 둘러보면
어김없이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새가 반갑기도 했지만
우린 그가 빨리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나는 작업을 하고 남편은 잔디를 깎고 있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 했다.
넓은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은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유리창을 일종의 하늘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기사 그들이 유리와 허공에 대한 차이를 알 수 있겠는가?
그동안 유리창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고
수많은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쳐 다치거나 죽은 경우를 보았던 우리는
그 소리의 크기로 미루어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바로 하나 남았던 그 새였다.
유리창에 정통으로 부딪쳐 목이 부러진 채 데크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는 그 새는
아직도 체온이 식지 않아 가슴이 따뜻한 채였다.
우린 서로 마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새가 싸늘하게 식었을 때
잘 싸서 뜰 한 구석 먼저 떠난 새가 묻혀있는 곳 근처에 묻어 주었다.


오늘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라본 큰 나뭇가지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숲이 텅 비어버린 듯한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듯한
이 허한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혹시 저 세상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의 명복을 빈다.
우린 커다란 창틀 밑에 목이 부러진 채 죽어 있는 산비둘기를 한 마리를 보았었다.
늘 두 마리가 한 쌍으로 날아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때로 집 앞 큰 나무에 앉아서 함께 나무 열매를 먹곤 하던 한 쌍이었는데....
우린 죽은 새를 상자에 넣어 뜰 한 구석에 묻어 주었다.
그 후로 남은 한 마리는 잘 울지도, 먹지도 않은 채
둘이 함께 앉아 있던 나뭇가지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운동을 할 때면 늘 건너편 나뭇가지에 앉아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 있을텐데 하며 둘러보면
어김없이 제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새가 반갑기도 했지만
우린 그가 빨리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나는 작업을 하고 남편은 잔디를 깎고 있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 했다.
넓은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은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유리창을 일종의 하늘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기사 그들이 유리와 허공에 대한 차이를 알 수 있겠는가?
그동안 유리창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고
수많은 새들이 유리창에 부딪쳐 다치거나 죽은 경우를 보았던 우리는
그 소리의 크기로 미루어 불길한 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바로 하나 남았던 그 새였다.
유리창에 정통으로 부딪쳐 목이 부러진 채 데크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는 그 새는
아직도 체온이 식지 않아 가슴이 따뜻한 채였다.
우린 서로 마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새가 싸늘하게 식었을 때
잘 싸서 뜰 한 구석 먼저 떠난 새가 묻혀있는 곳 근처에 묻어 주었다.


오늘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라본 큰 나뭇가지는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숲이 텅 비어버린 듯한
가슴 한 쪽이 뻥 뚫린 듯한
이 허한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혹시 저 세상에서
반가운 해후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의 명복을 빈다.
# by | 2009/11/09 12:44 | NZ LIFE 뉴질살이 | 트랙백 | 덧글(0)




















